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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 온 더 블럭 132회 문제 모음]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나 기술을 뜻하는 이것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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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 온 더 블럭 132회 문제 모음]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나 기술을 뜻하는 이것은 무엇?

 

이번주 유퀴즈 온 더 블럭 방송은 <상속자들>이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어요.

첫 번째로 만난 분은 증조할머니 레시피로 16년째 여의도에서 벨기에 전통 와플을 굽는 패트릭 사장님이었어요. 여의도를 찾는 사람은 메밀국수 맛집에서 밥을 먹고 바로 옆 가게에서 와플을 먹는 것이 코스로 알려질 정도라고 해요. 방송국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코로나19 전에는 하루에 와플을 1000~1500개 정도씩 판매했다고 해요. 매장 하나 있던 시절에는 혼자서 손으로 다 했지만 지금은 매장이 10개로 늘어나면서 기계로 반죽을 한다고 했어요. 2002년에 한국에 여행을 왔다가 너무 좋다는 인식을 받고 2년 뒤 한국 신학교에 진학했다고 해요. 한국의 빠른 문화에 놀라기도 했다네요. 2000년대 초반에는 벨기에 전통 리에주 와플집이 없었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 한국에는 브뤼셀 & 미국 와플 스타일만 존재했고 리에주 와플은 없었다고 하네요. 브뤼셀 와플은 벨기에 와플의 한 스타일로 가볍고 묽은 반죽이 특징이며 단맛이 덜해 보통 토핑을 곁들여 먹는 제품이에요. 미국 와플은 디저트용이 아닌 아침 식사용이며 달걀, 베이컨 등 짭짤한 토핑과 함께 먹는 제품이라고 해요. 리에주 와플은 설탕을 가공해 뭉쳐놓은 진주 모양의 '펄 슈거'를 섞어 만드는 제품이라고 해요. 펄 슈거의 캐러멜라이즈로 인해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제품이라고 하네요. 다른 와플과 달리 토핑이 없어도 단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해요. 4대째 이어져 내려온 증조할머니의 레시피인데 20년 전에 레시피가 적힌 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하네요. 그래도 다 기억하고 있어 만들수 있다고 해요. 우리가 집에서 김치를 담듯이 벨기에는 집집마다 와플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고 했어요. 와플 가게를 시작하면서 2006년에는 어머니와 다섯째 남동생도 장사를 시작했고, 2013년에는 넷째 동생 세드릭, 여섯째 동생 조나단도 합류를 했다고 해요. 지금은 벨기에가 그리워 다들 돌아갔다고 하네요. 처음에 한국말도 잘 못하고 그랬을 때는 벨기에가 그리웠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어요.

 

Q. 이것은 '재료를 고르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최초의 이것이 발견되었는데요. 오늘날 음식을 만드는 방법이나 기술을 뜻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A. 레시피

 

 

두 번째로 만난 분은 일본 명란 시장을 휩쓸며 연 200억 매출을 기록하고 계신 2대째 한국 전통 명란을 지키는 장종수 대표님이었어요. 아버지가 40년 동안 명란을 연구하고 제조하며 '대한민국 수산제조 1호 명장'으로 지정되었다고 해요. 수산제조 분야에서는 유일한 명장이라고 하네요. 2006년에 아버지가 자사 공장을 만들면서 확장을 했고,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공기업을 포기하고 내려왔다고 했어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느라 속을 많이 썩게 만들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해요. 일본 최대 규모 유통업체인 '세븐일레븐 그룹'에 명란을 납품한 것은 유래없는 일로 꼽힌다고 하네요. 2009년부터 7년간 납품을 했고, 80~90% 수출을 했다고 해요. 이때 연매출 200억을 넘게 올렸다고 하네요.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출하는 것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자사 공장도 2016년 매각을 하고 임대 공장으로 들어가게 될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해요. 다행히 국내 시장이 열리면서 현재는 국내 100% 유통을 한다고 했어요. 2017년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김사랑이 아보카도, 명란젓을 먹는 것이 방송에 나오며 SNS에서 화제가 되고 매출 110억을 달성한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이때부터 내수 시장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전 세계 80~90%의 명란을 일본에서 소비하기 때문에 일본이 원조라고 많이들 알고 있는데 명란은 우리나라가 원조라고 해요. 1920년대 명란젓은 흔한 음식이었으나 1930년대 일본으로 수출되기 시작하면서 귀한 음식이 되었다고 하네요. 명란은 한국이 원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문헌 조사까지 했다고 해요. '승정원일기'는 명란이 등장한 가장 최초의 문서라고 하네요. 민간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즐겨 먹었던 것이 명란이라고 해요. 원래 명란젓은 좀 짠 것인데 일본에서 저염으로 개발했다고 하네요. 명란을 맛있게 먹는 방법도 알려줬어요.

 

Q. 이것은 1814년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전이 쓴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생물 백과사전입니다.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었을 당시 섬 인근의 바다 생물 230여 종의 이름, 생김새, 특징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둔 것인데요. 올해 '동의보감'과 더불어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된 이것은 무엇일까요?

A. 자산어보

 

유퀴즈온더블럭132회

세 번째로 만난 분은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을 전수받아 3대째 떡볶이 맛을 지키는 김선자, 박은순 모녀였어요. 신당동 '마복림 떡볶이'를 운영하시는 분들이에요.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는 광고 멘트를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 같은데 바로 그 가게에요. 2년 전 유퀴즈 촬영 당시 점심 식사를 하러 들리기도 했던 곳이에요. 방송 이후 촬영했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네요. 1953년에 시작한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집은 2대 며느리와 3대 손녀가 이어받아 운영 중이에요. 다른 분들도 함께 혹은 따로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네요. 2011년에 돌아가시기 5년 전에 비법 소스의 비밀을 알려줬다고 해요. 할머니가 만든 비법 소스를 사용해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가족들은 모두 신당동에 모여 산다고 하며, 이 때문에 늦게 알려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어요. 새벽 2시 쯤 비법 소스를 할머니가 만든 뒤 8시부터 장사를 시작한다고 해요. 새벽에 소스 만든 할머니는 들어가서 쉬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다시 가게에 나와서 둘러보다 들어갔다고 하네요. 제작진의 소스에 대한 질문에 귀찮아진 할머니가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라고 대답한 것이 유명해진 광고 카피라고 했어요. 정해진 멘트가 아니었다고 하네요. 광고 이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질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고 해요. 할머니가 처음 떡볶이 가게를 차렸는데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가게도 늘어나 현재는 30개가 넘는다고 하네요. 사리 문화는 학생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라면을 넣어 먹는 것을 본 뒤 다양한 사리를 추가했다고 해요. 재미있는 것은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지만 다른 가게의 떡볶이를 많이 시켜 먹기도 한다고 했어요. 앙드레 김 디자이너가 단골이기도 했고, 최근에는 '경수진' 배우가 <나 혼자 산다> 촬영 중에 방문하면서 다시 손님들이 많이 찾았다고 해요.

 

Q.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이 채소가 약으로 쓰였다고 하는데요. 로마의 군대는 이동할 때 반드시 이것을 갖고 다니며 상처가 났을 때는 소독약으로 염증으로 열이 날 때는 소염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타임즈가 선정한 서양 3대 장수 식품 중 하나로 마복림 떡볶이의 재료로도 쓰이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A. 양배추

 

 

네 번째로 만난 분은 증조부 때부터 4대째, 105년 대장간 불씨를 이어온 칼 가는 부자 전만배, 전종렬 자기님이었어요. 1916년 충남 부여에서 대장간을 차리고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 현재 4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고 해요. 종친회 서적에 실제 기재돼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도사 '전우치'가 조상이라고 하네요. 1970년대 서울은 시내 칼 공장만 50여 개가 되어 대장간 일손마저 부족하던 시절이었다고 해요. 전만배 사장님은 14살 때부터 대장간 일을 시작했다고 했어요. 크리스마스 용돈을 벌려고 14세에 잡은 칼은 가업이자 천직으로 52년째 이어져오게 되었다고 하네요. 중국 시장이 개방이 되면서 값싼 수입 기구들에 맞서 우리 대장간의 생존법을 고민하던 중 직접 만든 칼 5천 자루를 싣고 전국의 칼 사용자들과 만났다고 해요. 조금 더 쓰기 편하고, 조금만 더 잘들어도 가격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 아이템이 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어요. 칼에 대한 안정적 수요가 있는 노량진 수산 시장에 칼 전문 대장간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초기에는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묵묵히 일한 덕분에 지금은 안정적이라고 했어요. 국내 참치 명인 1호 양승호 조리장도 이곳에서 칼을 구매하고, 이연복 셰프 등 단골이 엄청 많다고 하네요. 대전의 대장간 사업장은 700평 규모이고, 서울의 대장간도 손님이 줄을 설 정도라고 해요. 사육사를 꿈꾸던 전종렬 님은 아르바이트로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하다가 후계자 때문에 고민을 하던 아버지를 위해 가업을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하네요. 아들은 조금 더 편한 일을 하기를 바랬지만 결국 아들이 물려받게 되었다고 해요. 10년 동안 일을 배운 끝에 서울의 사업장을 물려받고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어요. 시끄러운 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말을 할 때 크게 하는 직업병이 생겼다고 하네요. 아들은 고기집에서 가위가 잘 들지 않을 때 소주병을 이용해서 가위를 갈아 사용하는 직업병이 생겼다고 했어요.

 

Q.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에 가장 맛이 좋은 이 생선은 예로부터 칼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대도'라고 불렀는데요. 조선 시대에는 돈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소금에 절인 이 생선을 먹으라는 말이 돌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 생선은 무엇일까요?

A. 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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