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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221회] 소녀들을 집합시킨 오빠 가수 히트송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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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221회>'소녀들을 집합시킨 오빠 가수'라는 주제로 진행이 되었어요. 이십 세기에도 팬 문화는 존재했었는데요. 그 중심에는 바로 '오빠 부대'가 있었죠. 그래서 이십 세기 오빠 가수들을 모아봤어요. 순위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어요. 어떤 오빠 가수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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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위 : 송골매 <어쩌다 마주친 그대>

 

펑크록 사운드와 신나는 비트가 돋보이는 2집 타이틀곡으로 1980년대를 록 음악 전성시대로 이끈 공전의 히트곡이에요. 만능캐릭터 구창모의 자작곡이죠. 시대를 초월하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희대의 명곡이에요. 1980년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어요. 당시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른 최초의 밴드라고 하네요. 당시 인기스타들만 찍는다는 잡지, CF 모델은 물론 청춘영화까지 출연을 했어요. 송골매의 인기는 4집까지 고공 행진을 이어갔고, 이후 솔로 활동에서도 구창모는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죠. 솔로 1집 수록곡 <희나리>도 큰 인기를 받았어요. 38년 만에 '송골매'로 다시 돌아왔었죠.

 

   9위 : 박혜성 <경아>

 

트로트 바탕에 리듬을 강조한 댄스 장르인 1집 타이틀곡으로 디스코장, 롤러장을 중심으로 히트하며 박혜성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어요. 1980년대 설렘 가득했던 추억의 롤러장의 단골 BGM이었다고 해요. 1986년 데뷔 당시 나이가 18세였어요. 당시 노래방 애창곡 상위권이었고, 좋아하는 사람 이름으로 개사해서 부르는 것이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하네요. 원조 책받침 스타답게 곱상한 꽃미모를 자랑했어요. 고1 시절 합창대회에서 <My Way>를 불러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해요. 넘치는 끼로 여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하네요. 다재다능한 박혜성의 능력에 비해 가수 활동을 짧았다고 해요. 그러나 남달랐던 음악적 재능으로 드라마 '야인시대' OST <야인>을 작사, 작곡했다고 하네요. 이후 꾸준히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라네요.

 

 

   8위 : 김범룡 <바람 바람 바람>

 

싱어송라이터의 능력을 보여준 김범룡의 데뷔곡으로 당시 가요계에 새바람을 몰고 온 공전의 히트곡이에요. 대학 시절 룸메이트의 연애 실화를 담은 노래라고 해요. 친구가 부산 여자와 음성 여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다고 하네요. 어느 날 자취방에 음성 여자가 찾아왔는데, 친구는 부산 여자와 데이트 중이었다고 해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음성 여자는 하염없이 자취방에서 친구를 기다렸다고 하네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애석한 처지의 음성 여자를 대변하여 작곡했다고 해요. 가사의 '바람'은 중의적 표현이라고 하네요. 발매 2~3개월 만에 전국에 '바람' 열풍을 일으켰어요. 당시 김범룡의 인기를 보여주는 <바람 바람 빵>으로 원조 스타 빵의 주인공이라고 해요. 1985년 오빠 부대를 이끌며, 콘서트 티켓을 사려는 팬들로 도로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하네요.

 

   7위 : 이승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밝은 멜로디와 유려한 노랫말이 인상적인 2집 수록곡으로 이승환의 맑은 음색을 앞세워 지금까지도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에요. 이승환은 맑은 미성과 미소년 이미지의 소유자죠. 동안 외모와 동안 성대로 영원한 어린 왕자라 불리고 있어요. '어린 왕자'라는 별명은 고등학교 후배인 기자가 처음으로 붙인 별명이라고 해요. 팬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공연형 아티스트에요. 전율과 소름이 공존하는 진정한 떼창 현장을 경험할 수 있어요. 가수와 팬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하모니를 느낄 수 있죠. 홍진경도 이승환의 찐 팬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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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위 : 김원준 <모두 잠든 후에>

 

고교 시절 자작곡이자 1집 앨범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풋풋한 감성을 세련되게 담아낸 댄스곡으로 신인 가수 김원준을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려놓았어요. 뛰어난 외모로 질투하는 사람들도 다수였다고 해요. 외모로 인해 실력이 가려진 가수죠. 김원준의 오빠부대 전설은 데뷔 전부터라고 해요. 김원준을 보러 온 여학생들로 교문 앞은 인산인해였다고 하네요. 최근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선재 업고 튀어>의 실사판이 김원준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해요. 김원준의 팬들은 차량의 번호판을 떼어가기도 하고, 타이어를 가져가기도 했다고 해요. 스타의 모든 것을 소장하고 싶어 모든 것을 떼어가려고 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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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위 : 변진섭 <새들처럼>

 

1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변진섭 특유의 청량한 목소리, 서정적인 가사와 정겨운 멜로디가 어루러져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았어요. 일상 탈피를 통한 자유의지를 담은 노래예요. 당시 사회 인식을 자각하려는 젊은 층의 의식과 맞물려 큰 인기를 받았다고 하네요. <홀로 된다는 것>으로 1988년 신인상 수상, <너무 늦었잖아요>로 1989년 대상을 석권했어요. <새들처럼>이 수록된 1집 앨범은 국내 최초 공식 밀리언 셀러 음반이라고 해요. 2011년 FT아일랜드가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고,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어요. 1집 앨범으로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며, 조하문, 임지훈, 유열 등 남성 발라드 가수 전성시대를 열었다고 해요. '발라드'라는 말도 변진섭에게 처음으로 붙인 수식어라고 하네요. 팬레터를 자루로 받았고, 지방에서 온 소녀 팬들로 집 앞에 항상 팬들이 상주했다고 해요. 1990년에 실시한 인기 가수를 뽑는 조사 결과 여자 응답자 중 1위는 변진섭, 남자 응답자 중 1위는 주현미, 2위는 변진섭이었다고 하네요. 성별 상관없이 대중 모두에게 큰 인기를 받았어요. 팬클럽 이름은 '진섭 세상'으로 1992년부터 팬들과 함께하는 캠프를 개최해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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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위 : 남진 <님과 함께>

 

작곡가 남국인의 컴필레이션 앨범의 수록곡인 이 노래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모토와 맞아떨어진 희망가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남진의 대표 히트곡이에요. '컴필레이션 앨범'은 한 음악가 또는 여러 음악가의 노래를 특정 분류에 따라 모은 음반을 말해요. <님과 함께>가 수록된 앨범도 5명의 가수가 함께 참여했다고 하네요. 앨범 재킷 앞면은 남진이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해요. 발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재반까지 발매했다네요. 60~70년대 한국 사회가 지향한 최대의 가치는 바로 '가난 탈출'이었어요. 대중들이 <님과 함께> 속의 주인공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네요. 1964년에 정식 데뷔한 남진은 약 7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그 시절 최고의 엔터테이너였다고 해요. 꽃미남 가수왕 남진은 항상 극성 여성 팬들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하네요. 목에 매달려 키스하거나 신체 접촉도 많았고, 숙소에는 속옷차림으로 들어오는 팬들도 많았다네요.

 

   3위 : 나훈아 <잡초>

 

싱어송라이터 나훈아 시대의 개막을 알린 3집 수록곡으로 나훈아만의 독특한 발성과 꺾기 창법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성인 발라드'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노래가 <잡초>라네요. 나훈아는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집에 가는 길에서도 작곡 활동을 한다고 하네요. 대표적인 무대 매너들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카리스마와 마초 외모 등 모든 것이 입덕 포인트에요. 곱상한 꽃미남의 정석인 남진과 거친 매력의 사나이 나훈아는 서로 다른 매력으로 라이벌이 되었죠. 나훈아의 노래 중 <고장난 벽시계>를 너무 좋아해 개명까지 한 분도 있다고 하네요. 대한민국 헌법상 이름은 5글자 이내가 기준이라 주민등록증상 이름은 '고장난벽시'로 기재가 되었다고 해요. 나훈아는 유튜브를 통한 알고리즘으로 Z세대도 오빠를 외치게 만들었어요. 현재 은퇴를 발표하고 마지막 콘서트를 하고 있죠.

 

 

   2위 : 전영록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85 전영록 전속기념앨범'의 수록곡으로 강렬한 비트가 특징인 뉴웨이브 댄스록을 시도해 화제를 불러 모았어요. 영원한 젊은 오빠에요. 타이틀곡 <불티>에 이어 연이어 히트를 한 곡이에요. 당시 10~20대 젊은 세대들의 우상이었어요. 서점에 가면 잡지마다 전영록 얼굴이 있었다고 하네요. 청청 패션뿐만 아니라 가죽옷과 선글라스까지 유행을 선도했어요. 옷을 입을 때도 소매를 올려 근육을 어필했죠. 실제로는 다른 사람보다 팔이 조금 짧은 체형이라서 소매를 걷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마저 찰떡으로 유행시킨 것이라네요. 85년도 심의에 전영록의 패션은 심의에 걸렸다고 하네요. 당시 팬클럽을 보유한 가수는 10여 명에 불과했는데, 전영록은 팬클럽 인원만 2만 명이었다고 해요. 숱한 고비를 이겨낸 전영록은 거대 팬덤을 이끌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어요. 아버지는 배우 황해, 어머니는 가수 백설희라고 해요. 배우인 아버지는 연기를, 가수인 어머니는 노래를 하는 것을 원했다고 하네요. 두 분의 소원을 모두 이루어 드렸죠. 액션 영화 <돌아이>로 거친 매력을 뿜어내기도 했어요. 최근에도 꾸준한 관리로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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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위 : 조용필 <모나리자>

 

정규 10집 앨범 수록곡으로 조용필의 음악 인생 20주년을 맞아 만든 앨범이에요. 최초로 앨범 전곡이 자작곡이며 또한 음반 전체를 외국 세션과 작업한 최초의 앨범이라고 해요. 팬들이 뽑은 조용필과 함께 부르고 싶은 곡 1위에 뽑혔다고 하네요. 조용필 콘서트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떼창곡이라네요. 노래 제목이 <모나리자>인 이유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해요. 차가운 미소의 모나리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모든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오빠부대의 뿌리예요. 80년대 '오빠부대'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죠. 70년대에는 스타에 대한 팬덤 현장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해요. 1982년 조용필 4집 <비련> 활동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팬클럽 결성을 위한 회원 모집이 가요계 팬덤 문화의 시초였다네요. 80년대 중반 전국에 약 2만 명의 회원을 자랑했다고 해요. 팬클럽에 가입하면 회원증과 고추잠자리를 새긴 메달을 선물로 줬다고 하네요. 굿즈 문화도 원조였네요. 1988년 당시 TV 광고 전속금만 2억 원이었고, 1991년 음반 취입등으로 연 수입 1억 3천5백만 원을 기록했다고 해요. 공연을 꾸준히 하며 팬들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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