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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156회] 메이드 인 대한민국! 1세대 K-POP 히트송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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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K-콘텐츠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K-POP이죠. 다시 뜨거워진 심상치 않은 한류의 반응의 원조로 2000년대 K-POP 스타 슈퍼주니어를 꼽을 수 있죠. 'K-POP'은 한국의 대중음악을 뜻하는 말로 최근 4세대로 다시 불어온 한류를 시작으로 이전 세대 K-POP까지 인기가 급증하고 있어요. 그래서 준비한 이번 방송의 주제는 <메이드 인 대한민국! 1세대 K-POP 히트송>이에요.

TOP 10 : 김완선 <오늘 밤>

1986년 발표한 1집 타이틀곡으로 팝 스타일의 멜로디와 김완선만의 음색으로 매력을 극대화한 곡이에요. 춤, 표정, 의상의 삼위일체를 이룬 노래에요. 1990년대 가요계를 평정해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기도 했어요. 변신의 귀재 & 섹시 여왕 등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잘 어울리는 분이에요. 뇌쇄적인 눈빛 하나만으로 MBC에서는 6개월 방송정지를 당했다고 하네요. 김완선은 본격 한류 붐이 일어나기 전 해외 진출을 노렸다고 해요. 1987년 일본 진출이 첫 스타트였다고 하네요. 대중음악으로 처음 일본 진출을 한 K-POP의 시초라고 해요. 일본어 버전으로 개사해서 불렀다고 하네요. 이때부터 일본 활동을 시작해 1990년 일본 정식 데뷔 <람바다>를 발표하며 오리콘 차트에 진입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해외문화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일본이라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1992년 6집 활동 이후 돌연 은퇴 선언 후 홍콩행을 선택했어요. 홍콩의 영화배우 겸 가수 알란 탐과 <헤어질 수 없는 우리> 듀엣을 발표했어요. 그러나 해외 진출이라기보단 알란 탐의 한국 활동을 지원 사격한 것이라고 해요. 한국과 동시에 홍콩에서도 인지도는 상승했다고 하네요. 1994년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에 진출한 1호 가수로 중국어 앨범 발표 후 본격적인 해외 활동을 재개했다고 해요. 대만의 당대 최고 음악 쇼에서 특정 코너가 생길 정도로 김완선의 인기는 급상승을 했다고 하네요.

TOP 9 : 김범수 <하루>

2000년에 발매한 2집 타이틀곡으로 애절한 보이스와 한 편의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김범수의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곡이에요. 당시에는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미국 R&B 음악계의 실력자 케그 존슨이 우연히 <하루>를 듣게 되고 취향을 저격당해 러브콜을 제안했다고 해요. 직접 한국을 방문해 영어버전의 녹음을 지휘했다고 하네요. 송혜교, 지진희, 송승헌 주연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었어요. <하루>는 <Hello Good-bye Hello>라는 곡으로 재해석해 불러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을 했어요. 얼굴 없는 가수답게 해외 앨범에 사진 한 장도 싣지 않고 발매했다고 하네요. 덕분에 미국에선 미국 가수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고 해요. 인종 차별주의로 동양인에 대해 배타적이었던 미국 사회라서 캐릭터 인형과 이니셜만 앨범에 존재한다고 하네요. 원더걸스, 싸이, BTS보다 먼저 빌보드에 진입한 것이고 빌보드 싱글 세일즈 차트에서 51위에 진입하기도 했다고 해요.

 

 

TOP 8 : 김현정 <혼자한 사랑>

1998년 발표한 1집 수록곡으로 빠른 템포와 그에 맞는 귀여운 펭귄 춤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에요. 김현정의 대표곡 <그녀와의 이별>과 함께 사랑받은 노래에요. 인기를 증명하듯 뮤직뱅크 첫 무대에서 곧바로 1위에 등극하기도 했어요. 한류돌 이전 해외 진출을 꾀했던 수많은 한류 가수들이 있었네요. 김현정은 2001년 성룡, 유덕화가 소속된 소속사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바로 중화권으로 진출했어요. 중화권 활동명인 '에이미 킴'으로 앨범을 발매했는데 앨범 전체를 중국어로 녹음해 발표했다고 해요. 한국어로 부르나 중국어로 부르나 시원한 가창력은 확실히 돋보였어요. 중화권 팬들을 홀리며 홍콩과 대만에서 각각 30만 장을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TOP 7 : 신승훈 <I Believe>

2001년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 OST로 영화의 흥행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곡이에요. 당시 역대 한국 영화 OST 판매 순위 2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인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불리고 있는 노래에요. 아시아권에서 영화와 함께 큰 사랑을 받았어요. 아시아 각국에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수출 되면서 OST의 주인공 신승훈은 해외 진출이 강제 소환된 케이스라고 하네요. 이를 계기로 2005년 신승훈은 일본 데뷔 싱글 앨범 발매 후 오리콘 차트 17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2007년 일봄 요코하마 아레나 콘서트는 전석 매진을 이루어 내기도 했다고 하네요. <I Believe>를 리메이크한 중국 가수만 해도 100여 명이 된다고 해요. 대륙의 스케일은 확실히 다르네요.

TOP 6 : 박용하 <처음 그날처럼>

2003년 방영한 드라마 <올인>의 OST로 큰 사랑을 받으며 박용하가 가수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곡이에요. 처음에는 'Who'라는 예명의 얼굴 없는 신인 가수로 활동을 했는데 음악방송 섭외 과정을 통해 박용하가 공개되며 가수로 인정받은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당시 벨소리, 통화연결음 다운로드 순위에서 꾸준히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하네요. 이미 KBS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일본에서 '욘하짱'이라 불리는 등 한류스타로 유명했었어요. 이후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드라마 <올인> OST까지 부르며 초절정 인기를 누렸어요. 드라마의 한류 열풍으로 2004년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펼쳤어요. 첫 싱글 앨범 <가지 마세요>는 한국 남성 아티스트 중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0위권에 진입했고 2005년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골든디스크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이후 4년 연속으로 일본 골든디스크를 수상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일본에서는 숫자 4와 8이 각각 일본어로 '욘'과 '하치'라고 발음되는 것에서 비롯해 4월 8일을 '욘하데이'로 지정하고 기억하고 있다고 해요.

 

이십세기힛트쏭156회


TOP 5 : 베이비복스 <Killer>

1999년 발매한 3집 앨범의 후속곡으로 걸크러시를 강조한 가죽 무대 의상과 총을 쏘는 듯한 안무로 인기를 끈 곡이에요. 섹시함과 걸크러시 매력으로 독보적인 인기를 구축했어요. 성숙한 걸크러시 콘셉트로 틈새시장을 공략했죠.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총 쏘는 안무로 원조 군통령으로 등극했다고 하네요. 당시 일부 군부대에서는 음악방송에 베이비복스가 나오면 모든 부대원들이 내무반 티비 앞으로 모이는 '베복타임'이 존재했다고 해요. 베이비복스 소속사는 해외 진출을 위해 고민하던 중 중국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1999년 중화권 진출을 선언했어요. 중국 진출 1년 만인 2000년 한국 걸그룹 최초로 베이징에서 8만 명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어요. 2003년 중국어로 발표한 <I'm Still Loving You>는 외국인 가수 최초로 중국 라디오 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하네요. 중국에 있는 팬클럽 수만 500개 이상이라고 해요. 성공적인 중국 진출로 일본 및 태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 진출했다고 하네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간 해외에서 총 45회 공연을 했다고 해요. 이 기간 이동한 총 거리를 더하면 지구를 20바퀴 돌 수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국내 연예인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라고 해요.

TOP 4 : H.O.T. <We are the future>

정규 2집의 삼속곡으로 구속받는 청소년 시기에 내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내용을 담은 대표적인 'SMP(SM Music Performance)' 곡이에요. 2집 앨범은 1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H.O.T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렸어요. 수많은 곡이 해외에서 사랑을 받은 원조 한류 스타이기도 하죠. 1998년 한국 가수 최초로 중국 현지에서 앨범을 발매했는데 히트곡 중에서 10곡이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중국에 정식 유통경로를 거친 최초의 한국 음반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해요. 당시 앨범 발매와 동시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원조 한류 스타로 우뚝 섰어요. 중국의 한 신문은 '한류 폭풍'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내기도 했다고 하네요. 중국에서 '한류'라는 단어를 사용한 첫 사례라고 해요. 소속사가 추정한 중국 팬클럽 수는 약 800만 명이라고 하네요. 전성기 당시 국내 팬클럽 수는 약 78만 명이었다네요.

TOP 3 : 안재욱 <Forever>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OST로 허스키한 보이스가 돋보이며 안재욱을 한류스타로 떠오르게 한 곡이에요. 방송 3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기록하며 가수상까지 휩쓸어 배우에서 인기 가수로 등극시킨 노래에요. MBC <별은 내 가슴에>는 49.3%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마지막 회에서 안재욱이 프러포즈 곡으로 직접 불러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드라마 역할을 계기로 해서 최고 한류 가수로 등극하게 되었어요. 가수는 안재욱의 오랜 꿈이었는데 드라마를 통해 이루게 되었다고 해요. 1997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처음으로 홍콩 TV에 송출되며 인기를 얻었고 그 이후 빠르게 중화권 전역에 방송되기 시작했어요. 이때 <Forever>를 중국어 버전으로 재녹음해 발매하면서 현지에서 크게 히트를 했고 중국 전역에 '안짜이쉬' 열풍이 불면서 한류 스타 대열에 오르게 되었어요. 중국 첫 방문부터 콘서트를 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는데 대성공이었다고 해요. 당시 안재욱은 해외 팬들을 위해 '여름 캠프'를 매년 개최해 2박 3일 동안 운동회부터 미니콘서트까지 팬들과 함께 했다고 하네요. 중국 팬은 안재욱 결혼 축하 영상을 옥외 광고로 띄우기도 했다고 해요. 중국 드라마 출연은 물론 수십억 원대 광고 모델로도 활약했어요. S전자 광고로 안재욱을 캐스팅하자 중국 매출이 30% 이상 오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고 하네요.

 

 

TOP 2 : 보아 <NO.1>

정규 2집 타이틀곡으로 유로 팝 댄스 느낌이 나는 밝은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슬픈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에요. 17살의 나이에도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줘 화제가 되었어요. 일본에서 정상을 밟고 보아 씨는 국내로 돌아와서 <NO.1>을 발표하며 국내에서도 최정상 가수로 등극했어요. 특히 뮤비 속 도쿄 타워를 배경으로 하늘을 찌르는 듯한 안무가 특징이었는데 일본을 제패한 한국 가수라는 의미의 춤사위라고 하네요. 보아의 20년 활동 중 가장 의미있는 곡 중 하나라고 하네요. 보아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서로 다른 곡으로 활동을 했어요. 일본에서는 <LISTEN TO MY HEART>로 활동해 한국인 최초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어요. 2002년 91주나 오리콘 차트에 랭크되었다고 하네요. 이 곡을 시작으로 <Valenti>까지 1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밀리언셀러에 등극하기도 했어요. 홀로 일본으로 진출하여 오리콘 차트 정상에 올라 아시아의 별이 되었어요. 팬레터를 보내기 위해 한글을 배운 팬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성공의 이면에는 홀로 견뎌야 할 고통과 인내력이 동반 되었다고 해요. 트레이닝 중 보아만 유일하게 일본어 수업을 들었고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NHK 일본 아나운서 집에서 생활했다고 하네요.

TOP 1 : 클론 <빙빙빙>

노이즈 천성일이 작곡한 클론의 2집 앨범 수록곡으로 반복적인 후렴과 재미있는 가사가 매력적인 곡이에요. 박력 넘치고 절제된 춤과 퍼포먼스로 클론의 남성미가 돋보이는 노래에요. 2집 타이틀곡 <도시 탈출>과 함께 여름을 강타했어요. 한류의 시조새이자 한류 열풍의 시발점이된 클론이 대만에서 성공한 이유는 대만에서 유키라는 가수가 클론의 2집 타이틀곡인 <도시탈출>을 리메이크 하면서 부터였어요. 번안곡 <묘묘묘>로 대만에서 12주 연속 1위를 하며 원곡 가수인 클론이 소개가 됐고 클론은 발빠르게 대만 투어를 시작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하네요. <빙빙빙>이 더 큰 인기를 얻으며 45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해요. 현지 팝 차트에서 '보이즈투맨', '머라이어 캐리'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대만 역사상 클론 노래만큼 많이 팔린 앨범이 없다고 하네요. 당시 대한민국은 의상부터 헤어까지 방송 규제가 엄격했기 때문에 자유분방한 두 남자의 한을 대만에서 봉인 해제하며 상의 탈의는 기본이었던 파격적인 무대가 대만 팬들에게 적중했다고 해요. 클론의 인기가 음악을 뛰어넘어 외적인 면까지 확산되면서 구준엽의 스킨 헤드와 근육미가 당시의 대만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다고 하네요. 최근 2022년 대만을 빛낸 최고의 화제 인물 1위로 구준엽이 선정되기도 했다고 해요. 현재까지도 한류 1세대의 영광을 재연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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