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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270회]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짠내 폭발 가수 히트송 TO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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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270회>는 아이돌 연습생이 데뷔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3~5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했어요. 김희철과 미주는 2년 반에서 3년 정도 했다네요. 연습생 시절에 제일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도 들려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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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연습생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데뷔 전후로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가진 가수들을 소환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짠내 폭발 가수 힛-트쏭'이라는 주제로 진행을 했어요. 어떤 가수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9위 : 박진영 <날 떠나지 마>

 

1994년 발표한 박진영의 1집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경쾌한 리듬의 하우스 댄스곡으로 박진영의 파격적인 패션과 화려한 춤사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30년이 지났음에도 독보적인 패션 스타일링을 선보였어요. 신인 가수임에도 1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가요톱10에 당당히 1위를 수상했어요. 의상은 물론 댄스 자체도 센세이션 했어요. 당시 X세대의 환호와 기성세대의 당혹감을 동시에 선사했죠. 박진영은 대학생 시절 작은 거인 김수철에게 발탁되어 3인조 그룹 '박진영과 신세대'로 데뷔를 했지만 흥행참패를 기록했고 이후 댄서로서 캐스팅되었다고 해요. 김건모의 매니저가 박진영의 남다른 춤선을 알아보고 영입을 했다네요. 댄서로 활동하면서도 가수의 꿈을 놓지 않았던 박진영은 강원래, 박미경과 함께 '프리스타일'로 데뷔 준비를 하던 중 무산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자작곡 <날 떠나지 마>로 볼 수 있는 오디션은 모두 참가했지만 다 떨어지고 SM 이수만 앞에서 마지막 오디션을 했다고 해요. 떨어질 때 곡만 팔 생각이 없냐는 질문도 받았다네요. 박진영은 김건모와 함께 김형석 작곡가의 녹음실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서 음악 프로듀싱에 매료되면서 곧바로 김형석 작곡가에게 가르침을 부탁했다고 해요. 2년 6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노하우를 습득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마침내 <날 떠나지 마>로 본격 가수 데뷔를 하게 되었다네요. 그 후 음반 제작에 투자한 기업의 CF에 껌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광고 모델이 신인이었던 정우성이라서 정우성이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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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위 : 김정민 <슬픈 언약식>

 

1995년 발표한 김정민의 2집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전형적인 록발라드 공식을 차용한 곡으로 김정민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어요. 이 곡으로 '김정민 앓이'가 전국을 뒤흔들며 마이클 잭슨 첫 내한 공연에서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어요. 김정민은 데뷔 전만 해도 3무 가수였다고 해요. 가수를 꿈꿔 본 적 없고, 누구 앞에서 노래를 해 본 적도 없고, 정식으로 노래를 배운 적도 없었다고 하네요. <사랑일 뿐야>로 유명한 김민우 덕분에 가요계에 입문하게 되었다네요. 김민우와 모임 중 우연히 1집 제작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해요. 노래 실력이 아닌 얼굴로 캐스팅되었다네요. 군 제대 후 곧바로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가수가 되기 위한 노력의 첫걸음으로 눈썹을 밀었다고 해요. 눈썹이 다시 자랄 때까지 돌아다니지 않고 온전히 노래 연습에 몰두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고 하네요. 1992년 방영한 드라마 <4일간의 사랑> OST를 사장님이 가져오면서 가수 인생의 첫 곡을 부르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후 방송 활동은 전무했다네요. OST 발표 후 2년 여의 기다림 끝에 1994년 6월 정식 1집에 OST 곡인 <그대 사랑안에 머물러>를 재수록했어요. 가요톱10 10위까지 오르며 드라마 캐스팅 제의도 있었다고 해요. 당시에는 가수로만 활동한다는 생각에 거절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점점 활동이 저조해지면서 생활고까지 겪었다고 해요. 1년의 방황 끝에 위약금까지 지불하며 김정민을 영입한 새로운 제작자와의 만남으로 제2의 데뷔를 하게 된 곡이 <슬픈 언약식>이라고 하네요. 1996년 1월 가요톱10 첫 1위 수상까지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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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위 : 송창식 <피리 부는 사나이>

 

1974년 '제1회 한국 가요제 Best 10' 앨범 수록곡으로 기발한 소재에 송창식 특유의 음색이 더해져 폭넓은 사랑을 받았어요. 제1회 한국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어요. 대상 후보와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벌였다고 하네요. 당시 대상은 박경희의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였다고 해요. 송창식은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로 가요계 데뷔를 했어요. 송창식은 만 3살 때 한국전쟁으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없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살아왔다고 하네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두각을 보였다고 해요. 실력으로 서울예고 수석 입학을 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했다네요. 지휘자 금난새가 서울예고 동기였다고 하네요.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음악 열정은 놓지 않았다고 해요. 쎄시봉 사장이 이상벽을 따라간 홍익대에서 노래 부르던 송창식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하네요. 고등학교 시절 전공대로 성악 발성을 살려 노래를 부르다가 쎄시봉 합류 후 팝 음악을 접하며 발성을 수정했다고 해요. 팝 장르에 맞게 계속해서 발성을 바꿨다고 하네요. 트윈폴리오 활동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발매하는 곡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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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위 : 소찬휘 <헤어지는 기회>

 

1996년 발표한 소찬휘의 1집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경쾌한 댄스 음악에 록 비트를 얹은 곡으로 소찬휘의 풍부한 성량과 화려한 무대 매너를 앞세워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어요. 이 곡이 데뷔곡이에요. 음반 발매 후 클럽 DJ 단골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며 클럽 차트 26주 동안 1위를 기록했다네요. 오락실을 평정한 리듬 게임으로 더욱 유명했어요. 소찬휘는 1988년 록밴드로 첫 데뷔를 했어요. 고등학생 시절 '이브'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죠. 화면에 잘 나오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기타리스트를 그만두고 보컬로 전향했다고 해요. 타고난 가창력의 소유자이지만 8년 간의 무명 생활을 겪었다고 하네요. 1집 발매 전 1995년 5인조 혼성 그룹 '큐브'로 데뷔를 준비하던 중 녹음까지 마쳤지만 데뷔가 불투명해지면서 그룹에서 탈퇴를 했어요. 나머지 큐브 멤버들이 동일한 노래를 재녹음해 데뷔를 했는데, 이미 <헤어지는 기회>로 소찬휘는 데뷔를 했던 것이죠. 같은 노래를 두 가수가 부르게 된 것이죠. 먼저 데뷔한 소찬휘 측에서 '큐브'의 곡에 판매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소송을 했고, 결론은 양쪽 다 활동 중단 판결을 받았다네요. 다행히 인지도를 높인 소찬휘는 4집 <Tears>로 정점에 올라섰어요.

 

이십세기힛트쏭270회_1위곡

 

   5위 : 이지훈 <왜 하늘은>

 

1996년 발표한 이지훈이 1집 타이틀곡인 이 노래는 연인의 죽음을 앞두고 오열하는 남자의 심정을 애절하게 담아낸 록발라드곡으로 신인이었던 이지훈을 스타덤에 올려줬어요. 당시 남학생들의 노래방 필수곡이었죠. 이지훈은 데뷔 전에 반지하에서 생활을 했다고 해요.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집과 거의 동일했다네요. 장마철에는 집안에 물이 차서 장판을 들어내고 신문지를 깔고 생활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데뷔 이후 <왜 하늘은>이 인기 있을 무렵에도 이지훈은 다섯식구가 방한칸에서 생활했다고 해요.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신문, 우유 배달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고 하네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을 향한 남다른 효심을 보였다고 해요.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과 인기상을 모두 싹쓸이했어요. 성공적인 1집 활동 후 난생처음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부모님, 형네 가족, 누나네 가족, 지훈네 가족까지 19명이 다 같이 한 건물에 모여 살고 있다고 해요.

 

 

   4위 : 이수영 <I Believe>

 

동양적 사운드가 인상적인 1집 타이틀곡으로 이수영만의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어요. 특유의 애절하고 호소력 짙은 비음은 목소리가 지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어요. 99년 당시 신화, 핑클, 이정현 등 댄스 가수들이 초강세를 이루던 시기였는데 발라드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며 더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이수영은 소녀가장 가수였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슬픔을 이겨내고 가수의 꿈을 위해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는데 데뷔 1년 전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죠. 데뷔 이후 발라드 여왕으로 별 탈 없이 승승장구한 줄 알았는데 또 한 차례 큰 어려움이 있었어요. 친척과 함께 기획사를 설립하고 8집을 발표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우울증과 슬럼프로 집에만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압류 딱지를 들고 찾아왔다네요.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던 이수영은 친척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는데 이수영 명의로 대출을 받으며 전 재산을 잃고 30억의 빚까지 떠안게 되었다네요. 다행히 현재는 다 갚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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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위 : god <어머님께>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가 담긴 1집 타이틀곡으로 IMF 당시 전 세대의 사랑을 받으며 국민가수 god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어요. god는 사실 6인조 혼성 그룹 '갓식스'로 데뷔 준비를 하고 있었고, god 멤버에 김선아가 더해져 있었어요. 데뷔 준비를 하던 도중 IMF가 터지면서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양재동 연습실에서 일산 숙소로 이동해 알아서 연습하며 살았다고 해요. 이후 회사 지원이 끊기고 연락마저 두절되었다네요. 도저히 데뷔를 시킬 사정이 되지 않은 회사가 멤버들한테 차마 말은 못 하고 방치했던 것이라네요. 그런데 6개월 동안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생존을 했죠. 데뷔 초에 들려줬던 짠한 에피소드는 이미 많이 유명할 정도에요. 박준형이 당시 인기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 조연으로 출연하며 약 38만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아 참치 캔과 라면을 사서 한 달을 버티고 했었다네요. 워낙 굶주린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계약 조건으로 식비 무제한을 넣었다고 해요. 6개월 식비가 2억이 나왔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고 하네요.

 

 

   2위 : 비 <안녕이란 말 대신>

 

2002년에 발표한 1집 타이틀곡 <나쁜 남자>의 후속곡인 이 노래는 슬픈 가사와 펑키한 멜로디가 어우러진 댄스곡으로 비의 귀여움을 한껏 강조하며 많은 이들에게 존재감을 알렸어요. 가수 '비' 인생에서 첫 1위를 안겨 준 노래에요. 썬캡과 글러브 패션도 화제가 되었죠. 트레이드마크였던 '꾸러기 표정'의 시작이 된 곡이에요. 비는 1998년 고1 때 6인조 보이그룹 '팬클럽'으로 먼저 데뷔를 했어요.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쏟아져 나온 보이그룹의 홍수 속에 묻힌 비운의 아이돌이 되었죠. 비는 그 와중에 7초의 짧은 분량에도 귀여운 막내 매력을 선사했어요. 99년 '팬클럽'이 해체된 후 비는 어린 마음에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해요. 당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네요.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노래와 춤에 대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고 수많은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다고 해요. 노래와 춤은 인정하지만 외모로 인해 매번 탈락했다고 하네요. 외모 때문에 18번이나 오디션에서 낙방했다고 해요. 19번째 오디션에서 박진영을 만나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네요. 비가 오디션에 들어와 했던 이야기를 한 인터뷰에서 박진영이 들려주기도 했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난의 시간을 겪으며 이후 연예계에서 있었던 일들은 자신에게 고난이 아니었다고 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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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위 : 조성모 <To Heaven>

 

세상을 떠난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1집 타이틀곡으로 초호화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모았던 팝 발라드곡이에요. 당시 조성모는 신비주의 콘셉트로 데뷔를 했어요. 가수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뮤직비디오로 궁금증을 증폭시켰죠. 이는 곧 음반 구매로 이어지며 1집부터 밀리언 셀러로 등극했어요. 솔로 가수로는 이십세기 마지막 밀리언 셀러라고 하네요. 고2 때 음악을 하고 싶어 군대 가기 전까지 가수를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반대를 했다고 해요. 당당하게 가수가 된 후 오겠다고 수능 직후 가출을 했다네요. 95년부터 98년까지 무려 4년간 가출 생활이 이어졌다고 하네요. 친구 집에서 6개월, 1년 정도 지내다 친구 부모님들이 불편해할 때마다 옮겨 다녔다네요. 집을 나온 후에도 오디션에 계속해서 낙방하다 인연을 맺게 된 작곡가 밑에서 4년간 문하생 생활을 했다고 해요. 1년 넘게 준비한 데뷔 앨범이 하루아침에 물거품 된 사연도 있다네요. 4년 간의 방황 끝에 21살에 <To Heaven>으로 데뷔하게 되었고 대성공을 거두었어요. 1집 앨범의 대성공 이후 4년 만에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는데 압류 딱지가 붙어 있었다고 해요. IMF로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약 10~15억 원의 부채가 생겼다네요. 그 길로 다시 집을 나와 친구 집을 전전하며 대학교 축제와 콘서트 등 설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가서 노래했다고 해요. <To Heaven>을 발표한 98년은 조성모가 형을 잃게 된 해라고 해요. 데뷔를 준비하는 동안 행방불명 됐다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 후 발견되었다네요. 그래서 무대 영상을 보면 눈이 항상 촉촉하고 눈물을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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