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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239회] 꿀꺽! CD 삼킨 라이브 히트송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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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세기 힛-트쏭 239회>는 미주의 퀴즈로 시작을 했어요. 영상 속의 무대가 라이브인지 아닌지를 맞추는 것이었죠. 가수들이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이면 시청자들은 놀라움으로 가득한데요. 그래서 놀랄 만한 그 시절 라이브를 모았다고 해요. '꿀꺽~! CD 삼킨 라이브 히트송'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죠. 어떤 노래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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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위 : 이범학 <이별 아닌 이별>

 

1집 타이틀곡으로 담대한 창법과 함께 어우러지는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대중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어요. '내 사랑 굿바이'라는 후렴구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내 사랑 굿바이'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요. 폭발적인 인기에 더불어 가요 프로그램에도 다수 출연을 했는데, 옷만 바뀔 뿐 한결같은 라이브 실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의 무대를 선보이며 음반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똑같은 컨디션을 보여 화제였어요. 정직한 창법과 모범생 이미지의 시너지가 극대화되며 여심 사냥꾼으로 등극하기도 했어요. 가요톱10 순위 진입 후 한 달 만에 1위로 올라 골든컵을 차지했고 그해 신인상까지 수상을 했어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출중한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원 히트 원더 <이별 아닌 이별> 하나로 지금까지도 활동을 하고 있죠.

 

   9위 : 유미리 <젊음의 노트>

 

제7회 강변 가요제 대상 수상곡으로 젊음을 응원하는 가사와 밝고 경쾌한 멜로디, 폭발적인 가창력이 잘 어우러지며 큰 히트를 기록했어요. 고등학교 교내 대회에서 Journey의 <Open Arms>를 불러 1위를 수상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해요. 졸업후에는 교장 선생님의 추천으로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고 하네요. 버클리에서도 개인 지도를 받을 정도로 실력자였다네요. 당시 방송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음폭이 넓고 리듬 감각이 뛰어나다', '고음에서의 맑은 목소리가 일품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하네요. 이런 가창력은 전문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어필했어요.

 

 

   8위 : 이기찬 <Please>

 

이기찬의 데뷔곡으로 그리움을 표현한 애잔한 멜로디와 보컬의 매끄러운 음색이 잘 어우러진 R&B 발라드곡이에요. 깊고 풍부한 중저음이 매력적이죠. 당시 어린 나이로 애절한 감성 표현이 어려웠다고 했는데도 깊은 호소력으로 소화를 했어요. 중3 시절부터 도봉산 청소년 가요제 금상 수상, 90년대 가수 등용문이었던 '별밤 뽐내기 대회'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Hero>로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네요. 음반과 편차 없는 라이브 실력으로도 유명해요. 외모는 물론 성대도 꾸준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7위 : 최재훈 <비의 랩소디>

 

4집 앨범 타이틀곡이자 최재훈의 대표곡이며 특유의 고음이 돋보이는 애절한 록 발라드로 큰 히트를 기록했어요. 쉬워 보이지만 따라 부르면 자동으로 음치 만드는 노래에요. 최재훈은 딕션도 좋아서 전문가들도 CD인지 라이브인지 구분이 불가능하다네요. 우연히 음향 사고가 발생하며 라이브라는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해요. 노래의 생명은 라이브라고 생각해서 무대는 거의 라이브로 진행한다고 하네요. 최재훈의 노래 실력은 권인하가 발견했다고 해요. 고등학교 시절 록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드러머였다네요. 우연히 밴드 데모 녹음 때 불렀던 노래를 권인하가 듣고 드럼은 별로인데 보컬이 좋다고 평가했다고 해요. 동일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보컬에 집중하라고 권했다네요. 지금은 팬들을 위한 공연 위주로 1년에 딱 한 번 활동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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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위 : 이은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은하가 직접 이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사한 곡으로 슬픈 멜로디와 잘 어우러져 지금까지 사랑받는 곡이에요. 허스키한 보이스의 정석이죠. 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라이브 실력자예요. 세션이나 박자감으로 라이브인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하네요. 81년을 기점으로 생방송 가요 프로그램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은하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라이브형 가수로 우뚝 서게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어요. 다른 가수에 비해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며 MBC 10대 가수상을 무려 9년 연속 수상했다고 하네요.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음악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어릴 적부터 무대가 놀이터였기 때문에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네요.

 

이십세기힛트쏭239회

 

   5위 : 조정현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1989년 발매한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이별을 시적으로 표현한 가사와 담담한 창법이 어우러져 이별을 맞이한 연인들의 아픔을 달래 주며 큰 사랑을 받았어요. 데뷔부터 고급 성대는 이미 완성형이었어요. 흔들리지 않는 라이브의 비결은 엄청난 연습량이었다고 해요. 하루에 8시간씩 2년 동안 연습을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은 폼을 유지할 수 있었다네요. 당시에는 넘사벽 비주얼로 가창력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요. 대중들도 가창력보다는 압도적인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네요.

 

   4위 : 정수라 <환희>

 

정수라의 파워풀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으로 이후 코요태, 싸이 등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어요. 정수라의 무대 대부분이 음원인지 라이브인지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해요. 밴드가 틀려야 티가 날 정도라네요. 마이크가 꺼지는 무대 사고가 발생하며 라이브를 인증했던 무대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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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위 : 김범수 <하루>

 

2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윤일상이 직접 작곡한 이 노래는 녹음하는 데만 무려 6개월이 걸렸고, 얼굴 공개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활동했음에도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사랑을 받았어요. 국내 가수 최초로 빌보드의 꿈을 이루었죠. 방송 노출 후 음반 판매에 직격탄을 맞으며 소속사에서 반대를 했지만 얼굴 있는 가수가 되기 위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을 했다고 해요. 음원으로만 들었던 사람들은 라이브를 처음 듣고 너무 똑같아서 소름 돋았을 정도라고 했다네요. 윤일상도 김범수를 처음 봤을 때 100%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하루>라는 곡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호흡, 음정, 음 모두 딱 맞도록 달달 볶아 가며 연습을 시켰고,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립싱크를 못해서 뮤직비디오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고, 컨디션이 안 좋아도 라이브를 고집한다고 해요.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선배 가수들도 김범수를 인정한다고 하네요. 김범수는 '재낭부 : 재능 낭비 부라더스'라는 그룹을 새롭게 결성했어요. MZ 음악 커버에 도전하며 젊은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2위 : 박효신 <바보>

 

데뷔곡 <해줄 수 없는 일>로 놀라운 신인 이미지를 얻은 뒤 더 깊은 감성의 보컬리스트로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된 곡이에요. 김범수가 라이브를 CD처럼 완벽하게 부르는 가수로 박효신을 뽑았다고 해요. 고등학생이라 믿기지 않는 파워풀하고 허스키한 창법을 구사했어요. 데뷔부터 남다른 재능을 가졌었죠.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선택하며 오직 라이브로만 승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어요. 데뷔 무대부터 완벽 그 자체로 괴물 신인의 등장을 알렸고, 이소라는 곧바로 듀엣 제안을 할 정도였다고 해요. 라이브 신답게 지금까지 수많은 레전드 무대를 남기기도 했어요. 그중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방송 사고 무대를 보여주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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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위 : 이승철 <마지막 콘서트>

 

부활 2집 <회상 3>를 리메이크한 곡으로 화려한 보컬 실력을 뽐내며 이승철의 전성기 신호탄 같은 역할을 했어요. 이소라도 라디오에서 이승철의 라이브를 듣고 입덕했다고 해요. 다른 가수도 라이브를 했는데 유일하게 이승철만 음정, 박자 안 틀리고 CD랑 똑같았다고 하네요. 국내 대중음악 전문가 20명에게 한국에서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가창력 좋은 가수로 이승철이 뽑혔다고 하네요. 또한 한 실용 음악 학부 학생들이 모시고 싶은 보컬 선생님 1위로 이승철을 뽑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라이브와 리코딩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 1986년 부활로 데뷔한 이승철은 수많은 히트곡으로 2,000회가 넘는 콘서트를 개최하며 자타공인 대한민국 라이브 황제로 군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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